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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역, 백제의 영광과 현대의 문화가 만나는 곳-제32장

소개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는 호남고속철도, 호남선, 장항선의 철도역입니다. 1915년에 이리역으로 영업을 시작했으며, 1977년에 발생한 이리 폭파사고로 파손된 후 1978년에 새로운 역사가 지어졌습니다. 1995년에 익산군과 통합되면서 익산역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2010년에 임시역사로 이전했습니다. 2014년에 선상역사로 영업을 개시했으며, 2015년에 호남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익산역은 단순히 교통의 요지가 아니라, 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입니다. 근처에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이 있으며, 국립익산박물관과 익산보석박물관에서는 백제의 보물과 유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현대의 문화와 예술이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익산역 광장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되어 있으며, 익산중앙체육공원에서는 다양한 스포츠와 놀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익산 교도소 세트장에서는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장을 체험할 수 있으며, 나바위 성당이나 웅포곰개나루 등에서는 아름다운 풍경과 설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탄생연도

1915년에 이리역으로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를 잇는 호남선의 중요한 역이었습니다. 이리역은 1977년에 발생한 이리 폭파사고로 파손되었습니다. 이 사고는 북한의 테러로 의심되는데, 열차에 실린 폭탄이 역사 안에서 폭발했습니다. 이로 인해 열차와 역사가 파괴되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 후에 이리역은 1978년에 새로운 역사가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1995년에 익산군과 통합되면서 익산시가 되었고, 역명도 익산역으로 변경되었습니다. 2010년에 임시역사로 이전하면서, 기존의 역사는 철거되었습니다. 그리고 2014년에 선상역사로 영업을 개시했습니다. 선상역사란 철도선과 같은 높이에 있는 역사를 말합니다. 2015년에 호남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고속철도와 일반철도가 함께 운행되는 역이 되었습니다. 익산역은 현재 전라북도의 교통과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주변의 문화

세계유산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은 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입니다. 미륵사지는 백제의 석탑 건축물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받는 석탑입니다. 미륵사지는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부모왕과 왕비를 위해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륵사지는 원래 석탑과 극락전, 대웅전, 법당, 강당 등으로 구성된 사찰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석탑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미륵사지 석탑은 삼층석탑으로, 백제의 예술과 종교를 대표하는 걸작입니다. 석탑의 각 면에는 불상과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석탑 안에서는 금동미륵보살입상과 금동향로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왕궁리유적은 백제의 수도였던 사비성의 왕궁터입니다. 왕궁리유적은 백제의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였으며, 왕궁, 궁궐, 공무소, 창고 등이 있었습니다. 왕궁리유적에서는 백제의 건축양식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 많이 발굴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백제의 왕궁으로 추정되는 오층석탑과 백제의 국보로 추정되는 금동대향로 등이 있습니다.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은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일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국립익산박물관과 익산보석박물관

국립익산박물관과 익산보석박물관은 백제의 보물과 유물을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국립익산박물관은 2017년에 개관한 새로운 박물관으로, 미륵사지와 인접해 있습니다. 국립익산박물관은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으며, 미륵사지에서 발견된 금동미륵보살입상과 금동향로 등을 비롯해 다양한 백제유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박물관에서는 체험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관람객들에게 즐거움과 학습을 제공합니다.

익산보석박물관은 2005년에 개관한 박물관으로, 왕궁리유적과 인접해 있습니다. 익산보석박물관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보석과 암석을 전시하고 있으며, 특히 백제의 보석문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익산보석박물관에서는 백제의 보석공예와 보석장신구를 감상할 수 있으며, 보석체험과 보석감정도 할 수 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과 익산중앙체육공원

평화의 소녀상과 익산중앙체육공원은 현대의 문화와 예술이 만나는 곳입니다. 평화의 소녀상은 2017년에 익산역 광장에 설치된 조각상으로,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위안부가 된 여성들을 위로하고 기억하기 위한 작품입니다. 평화의 소녀상은 화강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작가는 김주훈씨입니다. 평화의 소녀상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도 설치되어 있으며, 인권과 평화의 상징인 바로입니다.

익산 교도소 세트장과 나바위 성당

차로 약 15분 거리에 있는 익산 교도소 세트장과 나바위 성당은 아름다운 풍경과 설화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익산 교도소 세트장은 2016년에 개장한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장으로, 실제 교도소처럼 잘 꾸며져 있습니다. 익산 교도소 세트장에서는 무료로 죄수복과 교도관복을 대여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며, 운동장이나 구치소, 면회실 등 다양한 공간에서 재미난 포즈와 표정으로 추억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익산 교도소 세트장은 드라마 ‘닥터스’나 영화 ‘택시운전사’ 등에서 촬영된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나바위 성당은 1908년에 건립된 한국 최초의 돌로 만든 성당으로, 전통적인 한옥 양식과 서양적인 고딕 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나바위 성당은 익산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나바위 성당은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의 탄압을 받아 파괴되었으나, 1987년에 복원되었습니다. 또한 나바위 성당은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활동한 곳이기도 합니다. 나바위 성당은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져 있으며, 설화로도 유명합니다. 나바위 성당에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백제시대에 왕자가 공주를 위해 만든 것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주변의 인물

백제의 왕들과 공주들

익산역 주변은 백제의 왕들과 공주들이 살았던 곳입니다. 근처의 미륵사지는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부모왕과 왕비를 위해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의자왕은 백제의 31대 왕으로, 당나라와 연합하여 신라와 전쟁을 벌였으나 패하고 자결했습니다. 의자왕의 부모왕은 흥범왕과 명성왕비입니다. 흥범왕은 백제의 30대 왕으로, 당나라와 친선관계를 맺고 문화와 경제를 발전시켰습니다.

명성왕비는 흥범왕의 비로, 백제의 문화와 예술을 후원하고 민생을 돌보았습니다. 미륵사지에서 발견된 금동미륵보살입상과 금동향로는 명성왕비가 흥범왕을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의자왕의 아내는 진성왕후입니다. 진성왕후는 신라의 김씨 왕족 출신으로, 의자왕과 결혼하여 백제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진성왕후는 의자왕과 함께 신라와 전쟁을 벌였으나 패하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진성왕후는 당나라로 끌려가기 전에 자신의 목걸이를 끊어 백제의 유민들에게 나눠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익산역 근처의 왕궁리유적은 백제의 수도였던 사비성의 왕궁터입니다. 왕궁리유적에서는 백제의 여러 왕들이 살았습니다. 예를 들어, 성왕은 백제의 26대 왕으로, 사비성을 수도로 정하고 천문학과 의학을 발전시켰습니다. 무령왕은 백제의 25대 왕으로, 백제의 영토를 확장하고 문화와 예술을 윤택하게 했습니다.

무령왕은 익산에서 죽었으며, 익산쌍릉에 묻혀있습니다. 무령왕의 아내는 선화공주입니다. 선화공주는 신라의 진흥왕의 딸로, 무령왕과 결혼하여 백제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선화공주는 백제와 신라의 관계를 개선하는 역할을 했으며, 미륵사지에 불상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와 서동요

익산역 주변은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와 한국 최초의 성가인 서동요가 활동한 곳입니다. 김대건 신부는 1794년에 익산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청나라에서 성직자가 되어 돌아와서 한국에서 첫 번째로 성경을 번역하고, 한글로 성가를 작곡하고, 교회를 세우고, 신자들을 양육했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1846년에 순교하였으며, 1984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삼겨졌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익산 나바위 성당과 두동교회에서 활동했으며, 그의 유품과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서동요는 1830년에 익산에서 태어났으며, 김대건 신부의 제자였습니다. 서동요는 한글로 성가를 작곡하고 부르는 것을 좋아했으며, 한국 최초의 성가인 ‘주 하느님 찬미합니다’를 작곡했습니다. 서동요는 1866년에 순교하였으며, 2014년에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복자로 인정되었습니다. 서동요는 익산 나바위 성당에서 활동했으며, 그의 유품과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간재선생과 무왕

익산역 주변은 백제의 유명한 학자인 간재선생과 백제의 13대 왕인 무왕이 살았던 곳입니다. 간재선생은 백제의 23대 왕인 세옹왕의 아들로, 501년에 익산에서 태어났습니다. 간재선생은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으며, 천문학과 수학, 음악, 시문학 등 다방면에 뛰어났습니다. 간재선생은 백제의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특히 천문학과 수학에서는 세계적인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간재선생은 백제의 첫 번째 천문대인 천문대를 건립하고, 별자리와 별명을 정하고, 태양력과 음력을 통일하고, 원주율 3.141592로 계산하고, 삼각함수를 발견하고, 부등식을 풀고, 대수학을 개발했습니다. 간재선생은 익산에서 죽었으며, 익산 간재공원에 묻혀있습니다.

무왕은 백제의 13대 왕인 성왕의 아들로, 462년에 익산에서 태어났습니다. 무왕은 백제의 영토를 확장하고 국력을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무왕은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고, 한강 유역과 영남 지방을 점령했습니다. 또한 무왕은 당나라와 친선관계를 맺고, 문화와 예술을 윤택하게 했습니다. 무왕은 익산에서 죽었으며, 익산쌍릉에 묻혀있습니다.

주변의 설화

마룡지와 서동생가터

익산역 주변에는 마룡지와 서동생가터라는 설화가 있는 곳이 있습니다. 마룡지는 익산시 남중동에 있는 연못으로, 전설에 따르면 백제시대에 왕자가 공주를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왕자는 공주를 사랑했으나, 공주는 자신보다 용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왕자는 공주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연못을 파고, 그 안에 용이 되기 위한 비약을 넣었습니다. 공주는 연못에 들어가서 용이 되었으나, 왕자는 그리워하며 죽었다고 합니다. 마룡지는 그 후로 용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있으며, 비가 오면 용이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서동생가터는 익산시 남중동에 있는 가터로, 전설에 따르면 백제시대에 서동요가 성가를 부른 곳이라고 합니다. 서동요는 한글로 성가를 작곡하고 부르는 것을 좋아했으며, 한국 최초의 성가인 ‘주 하느님 찬미합니다’를 작곡했습니다. 서동요는 가터에서 성가를 부르다가 일본군에게 잡혀 순교하였습니다. 서동생가터는 그 후로 서동요의 영혼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있으며, 밤에 가면 성가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성당포구와 선화공주

익산역 주변에는 성당포구와 선화공주라는 설화가 있는 곳이 있습니다. 성당포구는 익산시 웅포면에 있는 포구로, 전설에 따르면 백제시대에 왕자가 공주를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왕자는 공주를 사랑했으나, 공주는 자신보다 바다를 사랑했습니다. 왕자는 공주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포구를 파고, 그 안에 바다물을 채웠습니다. 공주는 포구에 들어가서 바다와 함께 살았으나, 왕자는 그리워하며 죽었다고 합니다. 성당포구는 그 후로 공주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있으며, 파도가 치면 공주의 웃음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선화공주는 백제의 25대 왕인 무령왕의 아내로, 신라의 진흥왕의 딸입니다. 선화공주는 무령왕과 결혼하여 백제의 왕비가 되었으며, 백제와 신라의 관계를 개선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선화공주는 미륵사지에 불상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선화공주는 미륵사지에 불상을 세우기 위해 신라에서 돌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돌을 운반하는 배가 난파되어 돌이 바닷속에 빠졌습니다. 선화공주는 돌을 구하기 위해 바다에 들어갔으나, 살아나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선화공주의 영혼은 돌과 함께 미륵사지로 옮겨져서 불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금산과 오금사지

익산역 주변에는 오금산과 오금사지라는 설화가 있는 곳이 있습니다. 오금산은 익산시 부송동에 있는 산으로, 전설에 따르면 백제시대에 왕자가 공주를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왕자는 공주를 사랑했으나, 공주는 자신보다 산을 사랑했습니다. 왕자는 공주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산을 쌓고, 그 위에 사찰을 지었습니다. 공주는 산에서 사찰생활을 하였으나, 왕자는 그리워하며 죽었다고 합니다. 오금산은 그 후로 공주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있으며, 바람이 불면 공주의 기도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오금사지는 백제시대에 건립된 사찰로, 오금산 정상에 있습니다. 오금사지는 백제의 문화와 예술을 대표하는 사찰입니다. 오금사지는 석탑과 석조불상, 석등, 석각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백제의 예술과 종교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오금사지에서는 백제의 보물과 유물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백제의 석탑 건축물 중 가장 작은 것으로 알려진 오금사지 삼층석탑과 백제의 석조불상 중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오금사지 석조여래입상 등이 있습니다. 오금사지는 1962년에 국보 제8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준왕과 익산

익산역 주변은 백제의 28대 왕인 준왕이 살았던 곳입니다. 준왕은 백제의 27대 왕인 비유왕의 아들로, 576년에 익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준왕은 백제의 국력을 회복하고 고구려와 신라에 저항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준왕은 고구려와 신라에게 백제의 수도였던 사비성을 빼앗겼으나, 익산으로 수도를 옮기고 국호를 도백으로 바꾸었습니다. 준왕은 익산에서 새로운 왕궁과 궁궐, 공무소, 창고 등을 건설하고, 군사와 행정을 개혁하고, 문화와 예술을 장려했습니다. 준왕은 익산에서 죽었으며, 익산쌍릉에 묻혀있습니다.

마무리

익산역은 백제의 역사와 문화, 현대의 문화와 예술, 백제의 왕들과 공주들, 한국의 신부와 성가, 백제의 학자와 왕, 익산의 설화가 만나는 곳입니다. 1915년에 이리역으로 영업을 시작했으며, 2015년에 호남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근처에는 세계유산인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국립익산박물관과 익산보석박물관, 평화의 소녀상과 익산중앙체육공원, 익산 교도소 세트장과 나바위 성당 등이 있습니다. 익산역을 방문하면 백제의 영광과 현대의 문화를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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